나는 이렇게 두 딸을 대학에 보냈다 45

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나는 이렇게 두 딸을 대학에 보냈다 45

카테고리 없음

by moontwix 2019. 10. 25. 23:46

본문

나는 이렇게 두 딸을 대학에 보냈다 45




두 딸을 난생 처음으로 학원을 보내서 좋았지만, 그것도 잠시뿐 결국 올 것이 왔다. 가계부채가 도를 넘어 버렸다.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졸업식 때 국회의원상 시장님 상을 받고 읽어 생애 첫 사교육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하늘을 나는 듯이 기뻤다. 그러나 그것이 오래가지 않았다. 결국은 우리 가정에 올 것이 온 셈이다.

그동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어려운 동네로 이사를 와서 서울을 벗어나서 살림 규모를 줄이고 줄었지만 커가는 아이들을 사실 양육하는 데는 적잖은 돈이 비용이 들기 마련이다. 사교육을 안 하더라도 학습 교재라든지 체험학습이라든지 그 시기에 해줘야 할 것들을 해줘야 했었다. 무엇보다도 살림이 경제가 반 토막 났기 때문에 내가 벌어오는 것 그리고 플러스알파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아내가 직장 전선에 뛰어들어서 벌어오는 것이 내가 생활할 때보다 여의치 않았다. 결국은 가정경제가 한계치에 다다랐다.

2008년도 세계 경제의 다운 및 금융 질서 붕괴 등은 없는 가정의 형편의 지갑이 얇아질 뿐만 아니라 지갑을 더 열 수가 없었다. 이때 할 수 있는 것은 직장생활 때 갖고 생활 해왔던 카드들을 돌려막는 것과 현금서비스를 이용해서 결국에는 제2금융권, 제3금융권까지 대출 받아서 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한계점에 도달한 것이다. 더 대출도 안 되고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이제 남은 것은 어떻게 살아가며 어떻게 생존하는 것인가 하는 문제다.

오늘 속이 시커먼 가운데 길을 가다가 현수막 하나를 봤다. 개인 파산, 개인회생 광고였다. 눈에 크게 들어왔다. 핸드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개인 파산에 대해서 전에 자세히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 일이 내게 올 줄이라곤 상상도 못 했다. 그러나 내가 그 현수막에 의지해야 할 신세가 되었다. 결국, 아내와 상의해서 현수막 안내에 있는 전화번호로 문의를 하고 결국 우리 가정에 상태는 개인회생을 하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 그 해 2011년도 11월 그곳에 가서 상담하고 필요한 서류를 다 준비하라는 숙제를 받았다. 그리고 이제 법에 호소하는 그것밖에 길이 없게 되는 것이다. 이 땅에서 개인 신용 없이 살 것을 생각하니까 두렵고 막막하고 힘들었다. 하루 이틀이 지나고 서류 접수하는 것도 서류를 준비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들이었다. 발품을 팔아서 뛰어다니면서 그 모든 서류를 준비해서 개인회생 재판을 준비했다. 그해 가장 추운 날로 기억되는 그 날에 아내와 둘이 총총걸음으로 걸었던 그 날이 지금도 떠오른다.




댓글 영역